나는 외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를 따라 산으로 나가 약초를 모으고,
강으로 나가 낚시를 배웠고, 집에서는 나무 자르고 못질하는 법을 배웠었다.
그릇에 남은 밥 알 하나 때문에 눈물 쏙 빠지게 회초리를 맞아야 했고,
이불 걷어찼다고 방에서 쫓겨나는 일도 다반사였다.
늘 건강하고, 재주 많으신 외할아버지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돌아가셨다.
상을 치루는 동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외할머니께서 내 가슴을 강하게 내리치면서
이놈아, 너는 좀 울어야 할 것 아니냐며 통곡을 하셨다.
친손자들보다 외손자인 나를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
그토록 건강하신 분의 뜬금없는 죽음에 눈물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명절 때면 친할아버지보다 외할아버지 묘소에 한참을 앉아 있는다.
차례를 올리면서 외할아버지의 안부를 묻다, 문득 두려움이 느껴져서 옆에 있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나 엄마를 아주 많이많이 좋아하는데..."
"그런데..."
"만약에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을까봐 갑자기 두려워진다."
"애가 별소리를 다하네, 시끄럽고 일루 와서 할아버지께 잔을 올려드려."
"진짜라니까. 정말로 엄마가 죽었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몹시 두려워졌다.
내 곁에 항상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 자리에서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나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자 애를 쓰며 살고 있는 것일까?
순천 시립극단 정기공연 작품인 "불효자는 웁니다."를 보면서,
어린시절 나를 키워주었던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처럼 고마운 외할아버지의 뜬금없는 죽음과
그 소중함을 잃어버렸음에도 눈물 한 줌도 흘리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삶이라는 수레바퀴 속에서 인연이란 그저 스치고 또 스치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단지 스치기 위해 살고자하는 사람이 그 어디 흔하겠는가?
더군다나 가족이라는 그 특별한 인연이 어찌 그리 쉽게 스칠 수 있겠는가?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도 괜찮다며 한없이 다독거려주었던 가족이란 굴레가
왜 철없는 시절에는 그저 답답한 두꺼운 벽처럼 다가왔던 것일까?
성공이라는 미명 아래에서 모든 것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철없음과
정작 무엇이 소중하고, 아껴야했는지 깨달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가슴에 무수한 상처를 입어야 했던 나의 가족들.
자신의 배고픔을 자식새끼 먹는 모습만으로 끼니를 떼 우셨던 우리의 어머니.
혹여 자신의 누추한 모습이 자식에게 해라도 될까봐
멀리서 더 멀리서 그저 나는 괜찮다고 하시는 우리의 어머니.
불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의 장난 같은 인생사!
땅을 치고 후회를 해도 결코 갚을 수 없는 사랑 앞에
그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죄인이 되어버린 불효자의 회환의 눈물.
왜 우리는 우리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가장 큰 상처와 치명적인 아픔을 망설임없이 주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 상처와 아픔을 받아놓고도
그 어떤 대가도 원하지 않은 채 용서를 해주었던 것일까?
이 큰 사랑을 어찌 감당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라고 그랬던 것일까?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될 엄마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할까봐 몹시 겁이 났던 나의 모습이
벅차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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