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립합창단 제59회 정기연주회
“순천만의 봄”을 감상하고
나는 예술의 여러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한다. 그 중에서 더욱 관심 두고 자주 드나드는 분야는 음악이다. 음악에도 여러 갈래가 있지만 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한다. 사람의 소리를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음악과 악기만으로 생산해 내는 음악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나는 사람의 소리를 엮어 만든 음악에 더 관심이 간다. 그중에서도 합창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합창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 이유를 열거하면 사람마다 여러 음악에 대해 갖는 느낌이나 의미가 달라서 불필요한 논쟁이 될까 싶어 나는 그냥 합창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른 유형의 음악보다는 합창 연주를 즐겨 듣는다. 합창을 들을 때면 나는 늘 고려시대 유명한 정치가이자 시인(詩人)인 이규보의 『영정중월(詠井中月)』이라는 시(詩)가 떠오른다.
詠井中月(우물 속 달을 노래하다)
산 스님이 우물에 담긴 달이 탐나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물과 함께 병에 담았네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절에 이르면 알게 되리라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병 기울이면 달 또한 사라짐을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이 시는 산 속에서 도(道) 닦으며 살아가는 한 스님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스님은 많은 시간 도를 닦아 세간의 어떤 가치 있는 것들도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세상 어느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우물에 비친 달을 보고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우물에 내려앉은 달을 탐낸 것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착한 마음이다. 스님은 그것을 담아가지고 절에 옮겨 놓고 자꾸 바라보고 즐기고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병에 물과 함께 담았다.
여기에 동원된 시어(詩語) ‘달’은 스님이 수양을 통해 얻으려고 한 ‘절대 피안’, ‘부처’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달을 병에 담아오지만 절에 이르면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담는다. 이 시는 ‘얻었다’ 싶은, 아니 ‘얻고’ 싶은 ‘도(道)’ 그것마저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종교적 가치를 담고 있는 선(禪)적인 시(詩)이다.
내가 합창을 감상하는 공연장에서 이 시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소박한 스님의 바람이 나의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물에 비친 달이 탐나 가져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가녀린 소리로 애틋함을 전해주는 달빛소리, 종교적인 순수한 앙망이나 기원을 담고 경건함을 보여주는 미사곡의 달, 쓰나마처럼 강열하게 밀려오는 감동의 달빛, 보통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편안한 소리의 달빛을 나도 마음의 병에 가득 담아가고 싶은 욕심이 일기 때문이다.
더욱이 순천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이신 이병직 선생님의 지휘로 연주한 제59회 순천시립합창단 연주는 큼직한 병을 여러 개 준비해 넘치게 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일었다. ‘순천만의 봄’이라는 주제로 펼쳐진 연주회는 R.Burchard의 Ecce Dedi Verba Mea(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를 비롯한 3곡의 아카펠라로 시작되었다. 사람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가늠하게 해주었는데, 그것은 귀로만 듣게 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듣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음 스테이지에서 연주된 Horn Mass(오병희 곡)은 원어로 엮어진 곡이었다. 나는 원어로 연주하는 합창의 장점은 성악 발성에서 결점이 될 수 있는 우리말의 폐쇄음들로 인한 억눌림이나 옭아매는 현상을 비켜갈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합창단은 그러한 내 생각과 그 장점들을 잘 살려 부드러운 음들의 조합을 멋지게 디자인 해 주었다. 그래서 감상자로 하여금 한 층 더 격조 높은 감미로움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 무대에서 연주된 음악과는 다른 느낌의 Hold On! / Arr.S.V.Gibbs과 Vamos A Bailar(Let's Go Play)같은 유형의 음악들을 배치함으로써 감상자의 음악적 감각의 폭을 넓혀 놓은 점도 기쁨을 더해 주는 요소가 되었다.
특별히 이번에는 우리 순천시가 2013년 순천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고 있어서 여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은 시기에 열린 연주회였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에 적극 호응하면서 그 의미를 더 강화 시킬 수 있는 일을 합창단에서 하고 있어 좋아보였다. 우리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곡을 만들어 노래하고 보급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4곡을 공모해 처음으로 ‘순천만을 걸으며’, 순천만 이야기‘의 서로 다른 느낌의 곡을 시민들에게 선 보였다. 이는 음악이 대중과 시민에게 보다 더 쉽게 다가오도록 배려해 주신 프로들의 훌륭한 배려였다. 또한 이 시대에 필요로 한 시대정신을 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합창의 영역을 정신의 세계까지 더 넓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할만하다. 이처럼 합창단이 시민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 연주의 또 다른 일부요 보이지 않게 대중을 선도해 가는 리더자의 모습이라 하겠다.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아름다운 제스쳐를 취하는 합창단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주회는 더욱 뜻 깊은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 순천시립합창단의 활동은 관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무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불우시설을 찾아가고,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을 찾아가고, 학교를 찾아가고, 공허한 야외무대에 서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만족할만한 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음악을 디자인 해 냄으로써 매 연주회마다 표가 매진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좋은 결과가 있도록 노력한 합창단 관계자들과 단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한문(漢文)에는 ‘함영토화(含英吐華)’ 라는 말이 있다. 이는 ‘꽃 봉우리를 머금었다가 꽃을 토해 낸다’는 말로 훌륭한 작가가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해 내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사소한 칭찬일는지 모르겠지만 순천시립 합창단은 많은 곡들을 악보 없이 연주한다. 이는 음악을 몸으로 완전히 소화해서 꽃봉우리를 머금었다가 꽃으로 피워내는 열정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들의 연주가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우리 순천시에는 이렇게 멋지고 좋은 합창단이 있어 그 혜택을 누리는 우리는 행복하다.
합창을 사랑하는 시민 마종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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